입니다.(총 6항목) 펼쳐서(more or 제목 클릭) 봐주세요.
박목월 [朴木月, 1916.1.6~1978.3.24]
요약
한국시인협회 회장,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 등으로 활동한 시인. 주요 작품으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이 있다.
본명 영종(泳鍾)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경북 경주(慶州)
주요수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주요저서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주요작품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본문
본명은 영종(泳鍾)이다. 경상남도 고성(固城)에서 태어나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자랐다.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을 졸업하고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였다.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1963년 교수가 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에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이 되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자유문학상·5월문예상·서울시문화상·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고, 시집에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시》,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등이 있다.
박목월(朴木月, 1916년 1월 6일 ~ 1978년 3월 24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교육자이다. 본명은 박영종이다.
1916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문장》에 〈길처럼〉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46년 김동리, 서정주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했고,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하여 청록파로 불린다. 1953년 첫시집 《산도화》를 간행하고, 1962년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이후 활발한 문학활동과 함께 197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맡는등 문학단체에서도 활약했고, 1976년에는 한양대 문리대 학장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1978년 사망하였다. 아들 박동규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이다.
한편 4월혁명의 정신을 기리는 시를 짓기도 했으나, 대통령 부인 육영수에게 개인적으로 문학을 강의했고, 유신시절 그녀의 전기를 쓴 것 때문에 후배 문인과 세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원본 주소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B%AA%A9%EC%9B%94
박두진 [朴斗鎭, 1916.3.10~1998.9.16]
요약
시인.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후,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거미의 성좌》 등이 있다.
호 혜산(兮山)
활동분야 시
출생지 경기 안성
주요수상 아세아자유문학상(1956), 예술원상(1976)
주요저서 《거미의 성좌》 《박두진문학전집》
본문
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6)·삼일문화상(1970)·예술원상(1976)·인촌상(1988)·지용문학상(1989)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2001년 6월 프랑스 아비뇽 근처 고대 로마유적지로 알려진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시비가 세워졌는데, 대표작 〈해〉의 첫 구절이 앞면은 한글로. 뒷면은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있다.
조지훈 [趙芝薰, 1920.12.3~1968.5.17]
요약
청록파 시인. 자유당 정권 말기에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하여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 《승무》 등이 있다.
본명 동탁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경북 영양
주요저서 《한국문화사서설》
주요작품 《승무》(1939), 《고풍의상(古風衣裳)》
↑ 조지훈생가 / 경북 영양군 일월면. 경북기념물 제78호.
본문
본명 동탁(東卓).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생.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 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19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19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이다. 1962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
조지훈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조지훈(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은 일제 강점기 이후로 활동한 시인으로,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한양이며,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다.
목차 [숨기기]
1 생애
1.1 일제강점기
1.2 해방 후
2 주요 작품
2.1 시집
2.2 시론
2.3 수상 및 평론집
2.4 번역서
2.5 논문
3 가족 관계
4 같이 보기
5 참고문헌 및 바깥고리
[편집] 생애
[편집] 일제강점기
1920년 12월 3일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에서 태어남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상경
1939년 4월, 《문장》지를 통하여 등단
1941년 3월, 혜화전문학교 문과 졸업
1942년 3월부터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편찬 참여, 일제의 횡포로 오대산 일대에서 은거
[편집] 해방 후
해방 후 학문연구와 강의, 문단활동
1947년 2월, 전국문화단체 총연합회 결성에 중앙상임위원으로 참여
1947년 10월,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 강의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상임위원
1960년, 한국교수협회 중앙위원
1961년, 국제시인회의 한국대표
1963년, 고대부설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1967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7년, 한국신시60년기념사업회 회장
1968년 5월 17일 사망
[편집] 주요 작품
위키자료집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조지훈
[편집] 시집
조지훈.박목월.박두진,《청록집》, 1946
《풀잎단장》, 1952
《조지훈시선》, 1956
《역사앞에서》, 1959
《여운》, 1964
[편집] 시론
《시의 원리》, 1953
[편집] 수상 및 평론집
《창에 기대어》, 1958
《시와 인생》, 1959
《지조론》, 1962
《돌의 미학》, 1964
[편집] 번역서
《채근담》, 1959
[편집] 논문
《한국문화사 서설》, 1964
《신라국호연구논고》, 1955
《한국민족운동사》, 1964
《신라가요연구논고》, 1964
《수투전고》, 1966
[편집] 가족 관계
초대,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헌영의 둘째 아들이다.
[편집] 같이 보기
박두진
박목월
[편집] 참고문헌 및 바깥고리
조지훈 시비
조지훈, 《지조론(志操論)》, 우리말사랑 누리집 사이트
원본 주소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A7%80%ED%9B%88’
1939년 이후 문장을 통하여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은 해방 후 함께 합동 시집 '청록집'을 냄으로써 '청록파' 또는 '3가 시인' '자연파' 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들의 주요 관심은 자연이었다.
박목월은 흔히 향토적인 시인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의 소재는 흔히 자연이되 그는 그 자연 속에서 향토색이 짙은 용어 또는 사물을 찾아 내어 그것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그 배면에서의 이미지의 연결을 꾀한다. 그의 시에서는 동사가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정물화라는 느낌을 준다. 사람의 숨결이 스며 있지 않음도 볼 수 있다.
조지훈은 문화적 보수주의에 바탕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그가 시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잃어 버린 옛 질서요 옛 풍물이다. 그 옛 질서 옛 풍물에 대한 그리움이 때로 그를 우국적으로 되게도 하고 지사적인 풍모를 지니게도 만든다. 또는 그의 반근대화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하여 반항하는 꼴을 취하게도 만든다.
박두진은 이 둘에 비하여 더욱 관념적이다. 그의 시는 언젠가 올 메시아에 대한 찬미로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박두진의 자연은 메시아의 도래에 의해 완성될 수 있을 뿐이며 이점에 있어 그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을 노래한 지난 날의 자연인 것과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상주의자요, 뒤에 그가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된 사실도 이 문맥에서 이해된다.
출처 :
http://k.daum.net/qna/view.html?qid=00Qdr